[조합40주년] 수입에 의존하던 X-ray 등 첨단 의료기기 국산화

6·25전쟁 이후 피폐한 산업 시설 극복하고 의료기기 제조기업 새로운 희망 발견


전후부터 1970년초까지 우리나라 의료기기 생산현황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1950년대의 재건 사업기를 거쳐 60년대에 본격화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다른 산
업분야는 착실하게 성장의 발판을 마련해 갔으나 의료기기산업은 미 군수품과 수입품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초로 생산액이 1억 원을 넘어선 것은 1966년으로 그 이전에는 통계를 잡기도 미약한 수준에 불과했다.

1950년대 생산 품목은 대부분 주사기, 쇠침대, 핀셋, 가위 등 단순 가공품 위주였으며, 수십 가지에 불과했다.

그나마 1959년부터는 품목 수가 점차 늘어 1960년대에는 100여 개로 확대됐으며, 콘돔, 수액세트, 간단한 수술용 기구가 추가됐고 일부 엑스선 장비와 치과기자재에서 의미 있는 제작 경험이 축적되기 시작했다.

특히, 이 시기에 엑스선장치는 괄목할 만한 성장 역사를 만들어갔다.



해방 후 패망한 일본의 도진제작소 출장소를 인수한 방약규는 ‘고려 X선 기계 공업사’로 출발하여 1956년에 최초로 국산 KX-2F등 100ma, 60mA, 30mA를 조립 제작하였고, 같은 시
기에 이성철이 세운 ‘성신엑스레이공업사’에서도 같은 기종의 X선 장치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X선 장치의 국내 수요가 급격히 늘기 시작한 1960년대에는 다수의 완제품 생산업체는 물론이고 부품 전문생산업체도 출현했다.

1960년대 초반에는 문명화의 동아엑스선공업사, 한원국의 중앙엑스선공업사, 최영수의 서울엑스선공업사, 양윤형의 수도엑스선공업사, 한순식의 한일엑스선공업사, 박동식의 동양엑스선공업사, 은달동의 동신엑스선공업사, 김기태의 극동엑스선공업사, 신신엑스선공업사가 설립됐다.

60년대 중반에는 반연출의 무극, 방성관의 국제, 이겸차의 이화, 이안부의 중앙, 김봉제의 한성전자의료기 등이 새로 설립됐고, 후반에는 김정근의 동인, 황종섭의 동은엑스선공업사가 문을 열었다.

이 중에서 고압트랜스를 생산한 부품업체는 동인엑스선공업사, 한성전자의료기, 이양구, 박병인이 설립한 중앙엑스선공업사였다.

이 무렵에는 제품의 용량과 품질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게 되었는데 200~300mA 제품이 생산되었고 자기정류는 단상전파정류로 전환되고 태엽식타이머는 전자식 타이머로 바뀌게 되었다.



1667년에는 보건사회부에서 20mA 엑스선장치 20대를 발주하자 서울엑스선에서 일괄 수주하여 납품한 것이 대량생산의 시초로 볼 수 있으며, 1967년부터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일
본산 엑스선장치가 대량으로 유입되면서 70년대에는 난립한 국내 생산업체들이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이렇게 엑스선장치를 중심으로 생산업체가 증가하면서 일반 의료기 부분에서도 약간의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원인은 1960년대 중후반에 이르면서 미 군수품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축소되기 시작했으며, 수입품이 확대되었으나 가격이 비쌌기 때문에 생산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

초기 생산업자들은 외제 의료기를 모방하거나 변형시켜 제작경험을 축적해가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의료기기산업은 점점 그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특히 1970년대에 이르러 의료 환경의 변화와 국내 산업화가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그 영향이 의료기기 산업에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선 의료 환경이 대폭 개선되었는데 병원이 늘어나기 시작했으며, 국가에서는 1965년에 보건소법을 제정하는 등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보건사업의 체계화를 시도했다.

또한 60년대 후반에는 대규모 병상을 가진 현대화된 사립대학의 부속병원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의료기기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보건복지통계연보에 따르면 아래 표에서 나타난 것과 같이 1954년에 5,159개소이던 병의원
(병원, 의원, 치과병원, 보건소, 한의원 등 포함) 수는 1958년에는 7,007개소에 이르렀고 1961년에는 9천 개소에 육박하더니 1968년에는 1만개소를 넘어 서게 되었다.

이러한 병의원 수의 증가는 의학의 발전과 의료수요의 증가, 안정적인 국가의 의료정책 및 의료제도의 시행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 결과였다.

또한 정부는 1962년부터 경제개발계획을 강력히 추진하며서 산업화, 공업화를 추진하고 생산과 수출을장려하는 경제정책을 집중적으로 시행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의료기기산업도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아직까지 일부 단순제품에 한정될 수 밖에 없었다.

1970년에 이르기까지 의료기기 제조업체는 여전히 수십 곳에 불과했다.

이들 업체는 주로 엑스선장치, 치과기자재 생산업체가 주를 이루고 있었고, 일반의료기 부
문에서는 주사기와 주사침, 수술대 및 링겔 받침대, 수액세트, 콘돔, 안경, 간단한 수술도구, 수술용장갑을 비롯한 위생용품 등을 생산하는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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