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40주년-인터뷰] 한국백신 하창화 회장, "의료기기 만드는 사람은 달라야 한다"

(주)한국백신 하창화 회장

의료기기 제조업, 시간이 지날수록 인류 건강이라는 숭고한 의미 깨달게 해
조합 설립 목적은 국내 의료기기 산업 부흥…국내 의료기기 제조기업 발전 위해선 '의료기기조합' 중심으로 뭉쳐야



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은 창립 40주년을 맞아 지난 날들을 되돌아 보고, 앞으로의 발전상을 모색하고자 한다.

의료기기조합의 창립 멤버이면서 국내 의료계 존경받는 선배인 하창화 회장을 찾았다.


우연히 시작한 의료기기사업

“누구도 내가 의료기기 사업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지. 투자했던 의료기기 기업 대표가 갑자기 세상을 뜨게 되면서 어쩔 수 없게 맡게 된거야.”

㈜한국백신 하창화 회장은 1950년대 대학을 졸업하고 조교 생활을 하면서 해외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사람을 만나고 어울리기를 좋아했던 하 회장은 당시 의료기기 기업을 하는 사장도 여럿 알고 지냈다. 그 중 친하게 지내던 주사기를 만드는 기업 대표도 친분이 있어 조금씩 투자를 하던 중이었다.

어느 날 해당 업체 사장이 세상을 떠나면 서 회사가 문을 닫을 상황에 처했다.

당시 남북의료기는 회사가 문을 닫게 될 것 같자 투자자인 하 회장에게 와서 빚을 독촉했다.

하 회장은 관련 회사를 직접 맡아서 운영을 할 것인지 아니면 이대로 처분할지 결정해야 했다.

“당시 회사 벽 그늘 아래에는 외상값을 받으러온 아주머니들이 줄을 서 있었고, 조그만 창으로는 직원들의 말똥말똥한 눈망울을 껌벅이면서 보고 있었지.”

당시만 대부분의 물건을 외상으로 구입했기 때문에 월급날이 되면 외상값을 받으러 온 아주머니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하 회장은 회사가 문을 닫을 지도 모른다는 직원들의 걱정 어린 눈빛을 보고 한참을 망설인 끝에 회사를 인수하기로 한다.

“그때 ‘한번 해 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 그날로 남북의료기에 가서 기업이 갖고 있던 부채를 다 갚았지.”

사람을 좋아하던 그가 사람들에 대한 애정 때문에 의료기기 분야에 뛰어든 것이다.

협력과 신뢰를 최우선으로 일단 사업을 시작하기로 했지만 그 시작이 쉽지만은 않았다.

당시 ‘주사기’는 제조사가 아닌 판매상들에 의해 유통됐기 때문이다.

판매상들의 마음을 얻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병원에 납품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하 회장은 판매상들과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한다.


거래 신뢰 생기자 거래처 크게 늘어

“판매상의 어려운 점을 우리가 해소해 주기로 했어. 우선 어음을 낮은 이율로 빠르게 유통할 수 있도록 회사가 보증하기로 한 거야.”

당시에는 대급 지금 수단으로 어음이 통용됐다.

판매업체들이 현금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병원이나 거래처에서 받은 어음을 현금화해야 하는데, 할인도 문제였지만 확인하고 바꾸는 시간도 1시간에서 2시간이 소요되기 일쑤였다.

㈜한국백신은 어음할인 업체에 대해 일정 금액 최저 할인율로 바로 현금화할 수 있도록 보증했다.

만약에 어음에 문제가 있으면 회사가 그 금액을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이 바탕이 됐기 때문이다.

그 당시 한국백신에 어음 보증 도장을 받기 위해서 판매상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고, 한국백신은 어음 보증 도장을 찍어주는 직원이 상주했을 정도다.

물론 이렇게 신세지게 된 판매업체들은 자연스럽게 한국백신 주사기를 취급하기 시작했고 판매량도 꾸준히 늘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신뢰야. 그건 하루이틀 가지고 되는 것도 아니고 쉽게 사라지는 것도 아니어서 정말 중요하지”

한국백신이 사업을 확장해 백신 사업을 하게 됐을 때 일이다. 태풍 매미가 한반도를 강타했고, 많은 백신 업체들이 이를 손놓고 보고만 있었다.

당시 수입사들 상당수가 천재지변이라서 보상을 못한다고 했을 때 한국백신은 특수차 17대를 동원해 정전 등으로 인해 백신이 무용지물이 되지 않도록 병원을 도왔고, 특수차를 통해서도 보호하지 못한 30%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백신 교환 등을 통해 책임있는 모습을 보였다.

그 결과 병원에서 신뢰하기 시작했고 매출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국산 의료기기 구심점 필요 

“당시 한국의료기기공업협회가 있었지만 업계 대표들간의 친목 단체였어. 시간이 지나면서 의료기기 제조산업을 부흥시키기 위해선 의료기기조합이라는 별도의 조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지."

하 회장은 당시 의료기기 제조산업을 체계화하기 위해서 다양한 목적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조직을 설립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신흥 이영규 회장, 아이리 이상호 회장도 뜻을 같이 해 1979년 10월 당시 보건 사회부의 인가를 받아 한국의료용구공업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이영규 회장이 초대 이사장을 맡아 기틀을 다졌고, 녹십자 고영환 이사장, 아이리 이상호 이사장을 거치면서 국내 의료기기 대표단체로 자리를 잡았다.

“조합은 의료기기공업협회를 통합해 명실공히 의료기기 대표단체가 된 거야. 당시에도 수입업체들이 단체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어림도 없었지."

하 회장은 의료기기조합 창립 멤버로 9대 이사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의료기기를 만드는 사람은 달라야

한 때 주사기 포장에서 나오는 가루 같은 이물질이 크게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해당 제품은 당시 몇 원도 아닌 몇 전 이 쌌기 때문에 업체들은 대부분 그 가루를 사용했다.

당시 해당 물질을 사용하지 않는 곳은 한국백신뿐이었다.

“의료기기를 만드는 사람은 달라야 해. 조금 이윤을 더 남기겠다고 그런 짓을 하면 안돼. 제대로 만들어야 하고 좋은 물건이 공급될 수 있도록 해야 해”

사실 주사기 분야는 수익이 거의 남지 않는다.

하 회장은 수익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품질을 낮추기보다는 공정을 개선하는 방식을 택했다.

현재 한국백신 주사기 공장은 전 공정이 로봇을 통해 진행되고 있고, 사람이 관리하는 부분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하 회장은 후배 의료기기 기업들에게 좋은 거래선을 만들고 경쟁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하 회장은 경영에서 한 발 물러나 있지만 아직도 거래선을 바꿀 때는 별도 보고를 받고 있다.

또 벡톤디킨슨 등 굴지의 글로벌 기업들이 국내에 공장을 설립할 때도 국내 주사기 산업이 한 단계 발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한국백신의 공장시설은 현재 자타가 공인하는 아시아 최고 수준이다.

“좋은 거래선을 가지고 있고 경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만 있다면 언제든 일류가 된다고 믿는다”

하 회장은 국내 의료기기 기업들을 격려하는 말이기도 했다.

김정상 기자 sang@medine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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